칼럼
최근 지방에 갔다가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충돌한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오토바이 운전자로 보이는 여성이 도로 한복판에 누워 신음하고 있는 것을 행인 몇 사람이 응급처치를 해 주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5분 정도 지난 것 같았고, 경찰차와 경찰 둘이 현장에 있었고, 몇 분 지나서 119 앰뷸런스가 왔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는 데 놀랐다. 젊은 여자 경찰 한명은 디지털카메라로 현장 사진만 찍고 있었고, 남자 경찰도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경찰차를 주차해 놓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당장 교통통제를 하고, 부상자 응급처치를 하는 게 우선일 텐데, 그 모든 일을 행인들이 다 하고 있었다. 경찰은 앰뷸런스가 도착할 때까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경찰이 일반 시민보다 비상상황 대처 능력이 없는 것이다.
현장에 실력파 데려갔었어야
나는 그날 “아, 세월호 침몰 사건 뒤 우왕좌왕한 정부 당국의 모습과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희생자 가족들이 모여 있던 진도체육관에 대통령이 위로와 사과를 위해 방문했을 때도 그랬다. 가족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관계자들을 엄벌하겠다고 대통령이 아무리 약속하면 무얼 하겠는가. 조금이라도 일썰미가 있는 사람이 그때 대통령 참모들 중에 있어서 그 사람을 현장 최고책임자로 남겨두고 갔더라면? 그래서 그가 즉시 대통령 직권으로 여러 정부기관의 지휘 조직부터 하나로 정리한 후 피난민처럼 어지럽게 방치돼 있던 체육관 내의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칸막이 부스를 신속히 설치해서 가족별로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고, 가족별로 전담 공무원을 한 명씩 즉시 붙여서 복잡한 모든 행정절차 서비스를 대신 시켜주며, 상황 확인을 위한 대형 TV 몇 대를 즉시 설치해 줬다면?
노련한 가정주부는 어지러운 집에 들어가면 당장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감을 잡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이런 재난상황에서 현장 경험이 많은 전문가라면 당장 뭘 해야 하는지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을 안 해본 사람은 위기상황에서 패닉에 빠질 뿐이다. 대재난의 현장에서 전체 상황을 지휘할 수 있는 실력파가 한명도 없었다는 것이 충격이요, 절망이다. 못하는 사람들을 엄벌 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잘하는 사람을 투입해서 어떻게든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자기를 수행하는 사람들보다 그 상황을 해결할 실력자들을 데려 갔었어야 했다. 그게 안 되니까 몇 번씩 사과를 하고 눈물을 흘려도 상황이 진정이 안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엄벌과 조직 해체만으로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아무리 야단을 치고, 벌을 주고, 윽박지른들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 이런 식이라면 제2, 제3의 세월호 사건을 예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든 공무원에게 철저한 현장 중심의 공부를 다시 시키기 바란다. 정직하고 열심히 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그러나 성실함도 프로의 실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현장 실력파들을 책임 있는 자리에 앉히고, 그의 실력과 수고에 합당한 대가를 줘야 한다. 현 정부의 인재 관리에는 채찍은 있는데 당근이 없다. 그러니까 조직 전체가 너무 경직돼 있다.
잘하는 공무원에겐 박수쳐주자
로마의 백부장 장교는 수많은 실전을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 병사들 스스로의 투표로 뽑힌다고 한다. 리더의 권위는 오직 현장 실력에서 나온다. “책상에 앉아서 사물을 판단하는 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해경은 구조할 줄 알아야 하고, 의사는 환자를 살릴 줄 알아야 한다. 나이고 지위고 학벌이고 상관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실력이다. 우리 국민도 이제 엄벌과 질책보다 잘하는 공무원들이 실력 발휘하는 것을 보고 박수쳐 주고 싶다. 정부는 공무원 영웅들이 태어날 수 있는 토양을 좀 만들어 주기 바란다.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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