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말콤 글래드웰의 신간 ‘다윗과 골리앗’에 보면 한 이름 없는 미국 고등학교 여자농구팀 감독이 개발한 압박수비 전술 이야기가 나온다. 켄터키 대학의 감독 릭 파티노는 이 전술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파티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비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팀은 그 전술을 도입하지 못했다. 그 전술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체력이 필요했고, 뼈를 깎는 훈련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팀들은 다 적당히 잘하고는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그 무서운 훈련을 감당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다.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을 몰라서 못 한 게 아니라 알면서도 힘든 길을 가기 싫어서 포기한 것이다.
결단, 실행, 책임 의지 번뜩여야
최고의 승률을 자랑하는 한 이종격투기 챔피언이 말하기를 링에 올라갈 때마다 너무나 두렵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싸우다가 “이 선수에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 테크닉도 힘도 부족하다. 이제 그만 항복해야지”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상대방이 먼저 포기해 이긴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경은 성도들에게 인내하라는 말을 아주 많이 한다. 인내는 쉽게 말해서 버티는 능력이다. 한 번의 화끈한 싸움을 버티는 능력이 아니라 계속되는 힘든 하루하루의 싸움에서 도망가지 않고 버텨내는 강인함 말이다.
기초선거 무공천 결단을 너무 허무하게 포기하는 안철수 의원을 보면서 실망이 크다. 그의 정치 행보를 보면 힘든 상황만 생기면 ‘철수’해 버리는 패턴의 반복이다. 대선 후보직도, 반드시 한다던 신당 창당도 접었다.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지 않은 채 너무 이상주의적 약속을 턱턱 내뱉고, 시련과 비난이 거세지는 것 같으면 도망쳐 버리고, 기존 세력과 타협해 버리는 것이 그가 말하는 새 정치라면 나약하고 비겁하다. 그를 롤 모델로 바라보는 차세대는 결코 그런 면은 닮아선 안 된다. 젊고 신선한 이미지만 가졌다고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대가를 치르고라도 결단하고 실행하며, 책임을 지는 의지가 번뜩여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 모두의 리더이신 것이다.
최근 북한 소형 무인기 몇 대가 우리나라 군 당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미국이나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무인기들에 비교할 수 없는 값싼 것이었지만 심리적 충격은 엄청났다. 북한이 이런 식의 비대칭 전력을 가지고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비슷한 것으로 대남 침투형 AN-2기가 있는데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저고도로 침투할 수 있는 비행기다. 이것이 북한의 20만 특수부대원들을 싣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공포에 사로잡혔었다. 동해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북한의 소형 잠수정들이나 연평도 포격 때 사용된 대포들도 최첨단 무기는 아니다.
풍요가 우릴 나약하게 만들어
그런데 왜 우리는 북한과는 비교가 안 되는 경제력, 최첨단 무기들을 가지고도 번번이 뒷북만 치면서 불안감에 사로잡혀야 하는가. 북한이 우리보다 가난하고 별 볼일 없다고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자만하는 동안 절박한 그들이 결사적으로 한 번씩 내지르는 잽에 항상 빈틈을 얻어맞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는 이쪽의 비대칭 전력은 탈북자 단체들이 만들어서 날려보내는 풍선들이다. 남한의 소식을 전하는 삐라들과 DVD, 초코파이, 달러 지폐까지 넣고 북한 전역으로 날아가는 이 풍선들은 절박하고 가난한 탈북 단체들의 필사적인 창의력의 결과다. 그 어떤 남한의 첨단 무기보다 더 무서운 심리적 충격을 북한에 주고 있다고 한다.
난관을 타개하는 돌파구는 번뜩이는 머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필사적인 정신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요즘 조금만 힘들면 직장도, 가정도,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도 쉽게 버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의 풍요함이 오히려 우리를 그토록 나약하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닐까.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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