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난 18일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됐음을 선언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크렘린궁을 가득 메운 러시아 지도자들은 열렬한 기립박수를 보냈다. 우크라이나의 항의는 말뿐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경고와 제재에도 푸틴은 꿈쩍하지 않았다. 푸틴은 “서방은 이란과 이라크, 리비아 등에서 주민의 열망을 부당하게 이용했다”며 이 때문에 “아랍의 봄이 아랍의 겨울이 됐다”고 말했다.
청교도 신앙이 서구민주주의 힘
정말 그렇다. 이제 아무도 더 이상 ‘아랍의 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민중혁명이 휩쓸면서 체제가 뒤집어지고 아랍 세계의 정치지도가 다시 그려진 지 이미 3년이 지난 오늘, 아랍권 전역에서는 경제가 무너지고, 혁명 주도세력들이 분열되고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이스라엘과 함께 전 세계 성지순례자들의 단골 코스였던 이집트는 관광 수입이 뚝 끊겨 버렸다(최근 한국 관광객들의 버스 폭탄테러 사건 이후 더하다). 시리아에선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지금까지 6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약 200만명이 국외로 피신했다. 레바논은 이미 큰 혼란에 빠져 있다. 혁명 이전부터 문제가 많았던 예멘의 국민들은 지금 기아, 종파 갈등, 부족 분쟁에 직면했다. 아랍의 봄의 진원지인 튀니지도 부패와 범죄가 이전보다 훨씬 심하다.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라크는 말할 수 없는 혼란과 통제 불가능한 테러의 반복 속에 이제는 내전 양상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외교의 천재였다는 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불의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질서”라고 했는데, 지금 아랍의 현실이 바로 무질서 그 자체다. 이번 크림반도 사태를 통해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결코 자신들의 약한 이웃을 지켜주는 착한 헬퍼일 수 없음을 전 세계에 다시금 확인시켜줬다. 아랍에서도 그랬지만 옛 소련이 무너졌을 때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재정권이 무너진 그곳에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주입하면 그 나라들이 잘살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공산당의 철권 독재가 사라진 그곳에서 마약과 범죄와 가정 파괴와 소수 민족들의 저항이 들불처럼 번지고, 옛 소련은 엄청난 혼란에 직면했다. KGB 출신의 푸틴 대통령은 그 혼란 속에서 강한 리더십과 옛 소련 시대의 힘과 안정을 원하는 러시아인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저 자리에 섰다.
영적 쇠약으론 앞길 열 수 없어
서방 선진국가들은 ‘세계화=서구화’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화=민주주의+자본주의’로 연결된다. 그러나 서구에서도 민주주의 정치와 자본주의 경제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수백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것을 아직 채 준비도 안 된 제3 세계 국가들에 단시간에 받아들여 숙성시키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힘은 청교도적 기독교 신앙이었다. 신앙의 토대가 있었기에 서구 민주주의는 집단 이기주의로 흐르지 않았고, 자본주의는 욕심과 방탕의 늪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미국과 영국은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닐 정도로 영적으로 쇠약해졌다. 기독교 신앙이 빠져버린 서구의 민주주의는 인본주의가 되었고, 자본주의는 황금만능주의가 돼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 그렇게 병들고 나약한 정신력으로는 전 공산당 간부 출신인 푸틴 같은 사람의 무서운 집념에도 못 이기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흥분하지 말자. 과연 우리는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서구식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 지원으로 북한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못 먹고 못 입어도 사상교육만은 무섭게 받은 저들을 압도할 정신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만이 강하여 용맹을 발할 것”이라는 성경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게 된다.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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