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80년대 중반 미국 중서부 백인지역 한 조그만 마을의 한밤중. 고등학교 운동장 주차장에서 한 한국계 학생이 그때 막 북미주에 진출한 신형 현대 액셀차 지붕위에 올라가, 스피커로 애국가를 쩡쩡 울리게 틀어놓고, 태극기를 마구 흔들어 댄 것이다. 마을 사람들과 경찰들이 모여 들었을 때 그는 울면서 소리쳤다. “이것 봐라. 한국 차다. 나를 낳아준 나라 한국은 이제 이렇게 좋은 차를 만들어서 미국에 수출할 만큼 좋은 나라다. 한국 무시하지 마라.”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는 그동안 엄청난 인종차별을 당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가난한 나라”라고 비웃음 당하고, 툭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교포청소년의 설움이 현대 액셀의 미국 상륙과 함께 폭발한 것이다. 그에게 조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당시 나도 그 학생보다 몇 살 많은 교포 대학생이었는데 그 뉴스를 듣고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은 미국에서 삼성과 LG, ‘강남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그때만 해도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을 잘 몰랐다. 백인들은 조금만 자기들보다 낫다 싶으면 괜히 한국을 무시하면서 인종차별을 하곤 해서, 교포들은 참으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김연아 선수와 함께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우리 국민의 큰 관심을 받았던 빅토르 안. 러시아로 귀화해서 전성기 이상의 기량을 선보이며 쇼트트랙 금메달 3개를 거머쥔 그가 러시아 깃발을 몸에 감고 빅토리 세리머니를 할 때, 우리는 그가 조국을 버렸다는 생각보다는 한국의 핏줄을 가진 그의 감동적 인간승리에 박수를 보냈다. 그는 자신을 낳아준 조국에서 상처도 받았지만, 조국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한국 선수들의 부진에 가슴 아파했다. 그에게 조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700만 해외동포들 품었으면
갓난아기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갔다가 미국 국가대표 스키선수가 되어 올림픽 메달을 딴 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와 미약한 한국 모굴스키 국가대표팀 감독인 토비 다우슨. 자신을 버렸던 조국을 그래도 너무나 사랑해서 다시 돌아온 그에게 조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지난달 미국 버지니아주 상하원에서 동해병기(倂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미주 동포들에게 조국은 무엇이었는가? 미국 시민권자가 된 그들이 일본정부의 막강한 로비파워와 맞서면서 시간과 돈을 들여 그토록 외롭게 “동해” 바다이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유가 뭘까? 조국은 단순히 주민등록증 같은 서류만으로 담을 수 없는, 우리 가슴속에 있는 뜨거운 피요, 사랑이며, 노래요, 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품 같은 대한민국이기를
조국은 어머니와 같다.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조국이 너무나 비참하게 어려웠던 시절, 700만이 넘는 한국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져서 ‘코리안, 한궈렌, 카레이스키, 칸고쿠진, 코레아노’가 되었다. “내 어머니가 나병환자라 해도 나는 내 어머니를 사랑하겠다”던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조국 대한민국이 헐벗고 가난했던 시절에도 그들은 모두 조국을 목숨처럼 사랑했다. 고생해서 번 돈을 조국으로 보냈고, 조국에서 들려오는 작은 뉴스 하나에도 마음 졸였으며, 누가 조국의 욕을 하면 불같이 일어나서 대들었다. 이제 조국 대한민국은 세계경제 10위권에 드는 잘사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런데도, 잘살게 된 어머니가 오히려 가난했던 시절의 어머니보다 마음은 어째 더 각박해진 것 같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동포들에게 당당한 이중국적을 허락하면서, 내국인들과 똑같이 대우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느 나라의 시민권을 따든 그들 마음의 어머니와도 같은 조국은 이스라엘임을 느끼게 해 준다. 대한민국도 그런 넓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머니 조국이 되기를 나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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