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요즘 우리나라가 너무 우울하다”는 말을 도처에서 자주 듣는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그 뒤의 국정혼란, 월드컵 16강 진출 좌절과 GOP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회복을 모르는 경제침체 등 너무 힘든 상황만 계속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기운을 좀 내자. 그리고 이제 그만들 비겁해지자. 어려울 때 자기 책임은 없다고 하는 것이 비겁이다. “승리는 어머니들이 많지만, 패배는 고아”라는 말이 있다. 못되면 다 남 탓이라고 하는 못된 성향을 비꼰 말일 것이다.
누구도 책임 안 진다는 게 문제
한국 축구의 월드컵 16강 좌절이 홍명보 한 사람의 의리축구 탓만은 아니다. 2002년 4강 신화의 열기를 살려서 체계적인 유소년 축구 시스템 구축과 공평한 선수 선발, 제대로 된 K-리그 운영을 통해 전반적인 선진축구 인프라를 만들지 못한 모든 축구인의 책임이다.
세월호 침몰 사건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공무원들의 무기력함이 박근혜 대통령만의 책임도 아니다. 대통령이 소통과 화합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이때까지 고속 성장에만 취한 나머지 안전과 관리에 태만하고, 학연· 지연의 끈들을 탈피하지 못하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적당주의로 살아온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또 ‘관심병사’의 GOP 총기난사 사건 또한 군 당국의 관리 소홀에 분명 문제가 있지만 군대만의 책임 또한 아니다. 1997 외환위기 전후로 경제위기와 가정 파괴 속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들의 가슴에 쌓인 분노와 우울증, 건강한 대인관계 형성능력 부족, 교육현장의 왕따와 폭력 문화의 여파들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탓이 크다. 문제의 뿌리를 따지고 보면 우리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러니 원망과 책임전가일랑 이제 그만 좀 하자.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계속 찾는 한 우리는 결코 이 답답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것이다.
특히 정치 하시는 분들께 이제 좀 자숙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정부의 무능보다 비겁함이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한다. 어떤 인물을 청와대가 고심하고 검증해서 총리 후보로까지 세웠다면 적어도 청문회라는 정당한 법 절차까지는 밟도록 어떤 외부 공격도 막아줘야 되는 것 아닌가. 한편 총리 후보가 낙마할 때마다 큰 업적이라도 이룬 듯 의기양양해하는 야당의 모습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런 국정 파국이 장기화되면 여야 모두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 없게 되는 거다. 비겁한 여당과 싸움닭 같은 야당의 힘겨루기 속에 국민들이 얼마나 짜증나 있는지 알기나 하는가. 비겁하게 남에게 책임 떠넘기지 말고 지도자들이라면 묵묵히 욕을 먹고, 의연히 책임을 져라.
영혼의 병, 교회가 책임져야
교회도 책임질 일이 있다. 10년이 넘도록 한국에 살면서 칼럼을 써 온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특파원 데이비드 투더가 2년 전 펴낸 ‘불가능한 나라 한국’이란 영문판 책을 보면 짧은 시간에 경이로운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기적 두 가지를 이룬 한국에 먼저 감탄과 존경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서로 경쟁하고, 지나치게 남의 눈을 의식하며,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 온 탓인지 영혼이 지치고 병들었음을 지적한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고, 전체 장년 인구의 16%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생에 대한 만족도에서 세계 국가 가운데 102등을 보일 정도로 행복지수가 낮다는 것이다. 두 개의 기적을 이뤄낸 한국이 국민들의 행복과 만족까지 이뤄낼 수 있다면 그것은 세 번째 기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영혼의 문제인데, 이야말로 교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 책임질 일을 책임지는 용기. 진심으로 ‘내 탓이오’라고 말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겠다는 결단. 그것이 이 우울하고 답답한 한국의 현실을 뚫고 나갈 돌파구의 첫 단추다.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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