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불신의 2013년
2014년 새해의 막이 올랐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불안과 불신의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북한은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휴전협정 백지화 선언에 이어 개성공단 폐쇄라는 강수를 두더니 2인자 장성택 일파를 잔인하게 처형해 버렸다. 북한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모두가 경악했고 저런 집단이라면 전쟁도 불사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도 주었다. 게다가 일본 아베 정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라는 극단적 도발로 끝없이 우향우하고 있고, 이에 맞서 중국의 시진핑은 새삼 마오쩌둥을 찬양하며 서서히 좌향좌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낀 한국의 외교는 너무나 곤혹스럽다.
외교안보보다 사람들을 더 불안하게 하는 것은 도무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경제다. 대졸자 10명 중 4명은 취직이 안 될 정도로 청년 실업난이 심각하고, 중견 직장인들은 40대 후반부터 이미 명예퇴직의 압박을 느끼며 불안한 버티기를 하고 있다. 개인이 자영업 창업에 성공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마무리된 철도 파업이 남긴 우리 사회의 노사 대립의 피곤한 여파는 아직 죽지 않았고, 세계 경제마저 차갑게 얼어붙어 쉽사리 출구가 안 보인다.
모든 것이 불안해질수록 사람은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법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의 사람 간 불신의 벽은 갈수록 높아져만 간다. 일단 힘 가진 사람들, 권위자들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지난해 흥행에 성공했던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시자들’ ‘감기’ ‘관상’ ‘변호인’ 같은 영화들은 모두 힘 가진 사람들의 부조리와 갈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세상에 대한 원망을 자신의 부모에게 쏟아내는 ‘패륜카페’마저 등장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이웃사촌은 옛말이고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 방화까지 저지를 정도로 사람들이 서로에게 날이 서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사나운 댓글로 유명인을 난타하는 온라인 테러장으로 변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CCTV와 블랙박스를 수도 없이 설치하고, 불안감 때문에 서로에게 좀 더 먼 거리를 유지하는 폐쇄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래서일까? 연말연시를 보내면서 온 나라가 도무지 신바람이 나지 않게 착 가라앉아 있다. 새해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될 거라는 은근한 두려움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악의 시간은 최고의 시간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서두에 보면 “그때는 최고의 시간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시간이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가던 폭력과 혼란의 시대였기 때문에 최악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사람들 가슴속에 있는 진실과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최고의 시간이었다는 것. 한 노년의 대학교수는 디킨스의 이 말을 인용하며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됐던 때의 한국은 최악의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힘을 합쳐 사랑하고 노력하며, 모든 것이 블루오션으로 노력만 하면 기회가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금 한국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최악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단군 이래 한국이 세계 속에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때도 없었던 최고의 시간이기도 하다.
초대교회가 제국의 무서운 핍박으로 죽음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때, 사도 요한은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는 환상을 계속 보았다. 보좌에 앉아 계심은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뜻한다. 우리는 세상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결코 흔들림 없이 상황을 주도하시며, 우리에게 소망의 미래를 주실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절망보다 강한 거룩한 소망으로 2014년을 기대해 보자.
한홍 (새로운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