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야당의 신세가 서럽습니다. 저희들은 약자의 입장에서 싸우고 있는데, 국민들은 저희들을 어떻게 보나요?”
수년 전 야당 의원들의 리더십 포럼에 강사로 초대받아 갔을 때 한 젊은 의원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도 여러분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좋은 사무실에 높은 연봉과 각종 혜택을 누리고 계시며, 한마디 하면 신문 방송에 다 실어주는 막강한 힘을 가진 분들 아니십니까? 우리 국민들은 야당은 대안 없이 싸움만 하자는 투사들이라고 생각하고, 여당은 너무 욕심과 권위주의가 많아서 자리에는 앉아 있지만 리더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침묵이 흘렀다. 그 자리에 있던 의원들 대부분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날 헤어지면서 내게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몇 년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변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연말이 되었는데 나라 분위기가 너무 침울하다. 서민들이 느끼는 불경기의 기운은 겨울 한파보다 더 매섭고, 없는 직장을 찾느라 애달픈 수많은 청년들과 명퇴 중년들의 멍든 마음은 아무도 만져주지 않는다. 정치권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었다. 대선불복을 다수 국민의 뜻인 것처럼 유일한 생존 어젠다로 밀어붙이고 있는 야당이나, 신념과 원칙은 있지만 겸손과 소통의 섬김이 없는 집권 여당이나 우리를 슬프게 하긴 마찬가지다. 마치 아이들 놔두고 자기들 자존심 지키려는 부부싸움에 여념이 없는 아빠 엄마 같다.
자유라는 이름의 인물 죽이기다른 건 놔두고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시작돼 지금은 온 나라의 문화로 번져 있는 참 안 좋은 습관 하나는 인물 죽이기다. 독재정권 체제에서는 너무 극단적 영웅숭배 사상을 강압하는 데 반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너무 모든 사람들, 특히 지도층 인사로 떠오른 사람들을 난도질해 추락시켜 버린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남보다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은근히 그들의 추락을 바라는 심성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다음세대 교육이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 요바린다시에 있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을 방문해 본 적이 있다. 큰 규모도 규모지만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촘촘히 안팎으로 잘 꾸며 놓아서 놀랐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대통령이다.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별로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싶어하지 않는 대통령일 수 있다. 그런데도 그 대통령의 기념도서관을 그토록 잘 만들어놓고 관광객들을 비롯한 주변의 모든 학교 학생들이 부모와 함께 와서 견학할 수 있게 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같은 대통령들의 기념도서관들도 아주 잘 만들어놓았고 항상 어린 학생들을 포함한 관람객들로 넘쳐난다. 그 대통령들이 정말 약점이 없어서, 미국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무지하고 순진해서 그럴까? 결코 아니다.다음세대의 꿈을 키워주자아이들은 그래도 어릴 때 꿈이 대통령이고, 국회의원, 변호사, 의사, 판사, 엔지니어, 배우 등등이다. 우리는 꿈이 커서 좋다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꿈꾸고 있는 그 자리에 지금 앉아 있는 사람들을 온 세상 앞에서 욕하는 모순을 보인다.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꿈꾸는 그 자리에 가 보면 그렇게 된다는 절망감을 미리 심어주는 격이다.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하면서 그 꿈을 우리가 지금 죽이고 있는 거다. 힘 있는 사람들의 단점을 무조건 덮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낸다고 하면서 다음세대의 꿈마저 죽여 버리지는 말자는 거다. 안 그래도 사는 게 힘든데, 너무 서로를 대하는 것이 날이 서 있다. 이 추운 겨울에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서로 좀 사랑하고 격려하면 안 될까?한홍(새로운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