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시아나 여객기의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활주로 충돌사고 소식은 우리 모두를 많이 놀라게 했다. 자세한 사고 경위와 사고 현장의 처참한 장면들을 보는 나의 심정은 남달랐다. 왜냐하면 오래전 나도 이번 사고와 거의 흡사한 대형 비행기 사고를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1999년 3월 어느 폭풍우 치던 오후. 나를 태운 대한항공 여객기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처럼 바다에 인접한 까닭에 바람이 세고 안개가 잘 끼며 활주로가 좁고 짧은 포항공항에 내리면서 사고가 났다.
바람에 요동치던 비행기는 거칠게 쿵 착지하더니, 한참을 달리다가 활주로 옆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 불이 펑 나버리더니, 비행기 앞부분부터 우두둑 꺾어지면서 승객들의 짐이 떨어지고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마침내 우지직 기체 꺾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비행기가 쿵 하고 서버렸다. 한참 정신이 멍해 앉아 있는데, 누군가 비행기 옆 날개 비상구 문을 쾅 하고 밀쳐 열었다. 비행기가 폭발할 줄 모르니 빨리들 나가시라는 고함소리를 듣고 우리들은 엉겁결에 비행기 밖으로 뛰어 내렸다. 한참을 걸어 나와서 뒤돌아보니 비행기는 활주로 가장자리 밑 고랑에 두 동강으로 꺾여서 처박혀 있었고, 부상당한 승객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하루하루 벼랑끝에서 산다다행히 그때 그 큰 사고에서 중경상자는 많았어도 사망자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사고 후유증으로 두 달이 넘는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고 몇 년간 비행기가 착륙할 때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정신적 사고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사고를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르다. 뉴스로 전해 듣는 것과 그런 사고의 직접 피해 당사자가 돼 보는 입장은 천지 차이다.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을 놓고 논쟁이 분분하다. 하지만 피해 당사자였던 내 입장에서는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져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분노할 겨를도 없이 한동안 그냥 멍한 멘붕 상태였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른 뒤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매순간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였다.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 하루에도 수천, 수만대의 비행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날아다니고, 우리도 항상 그 비행기 중 하나에 타고 있는데 그동안 무사히 살아왔음에 대해 별 감사함 없이 무덤덤하게 살아왔다. 비행기 사고뿐 아니라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한 해 5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매일 자동차를 탄 우리는 아직까지 살아있다. 울리히 백이 말한 대로 현대 사회는 하루하루 벼랑 끝을 걷는 듯한 ‘위험 사회’다. 그러니까 큰 사고 현장에서 살아난 것만 기적이 아니고, 매순간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가장 큰 기적이다. 아무리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조심한다 해도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100% 안전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인 것이다.삶은 길이로 평가될 게 아냐그렇다고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으셨단 뜻은 아니다. 예수님도 33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이 땅에 사셨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삶은 길이로 평가할 게 아니라 무게로 평가돼야 한다. 살아있음은 살려 두시기 때문이고, 살려 두시는 것은 시키실 사명이 있어서이다.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또 하루의 생명을 이 땅에서 주시는 거다. 그것을 깨닫고 결코 하루하루 살아있는 순간을 당연시 여겨선 안 되는 것이다. 그때 포항 비행기 사고에서 살아와서 서울에서 가족들을 보고, 교회를 볼 때 얼마나 눈물이 나던지. 인생 한순간 한순간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귀하게 여기고 매순간 감사하며 최선을 다해 밀도 있게 살아야 하리라.한홍 담임목사 (새로운교회) |